아들은 남편이 박사 공부하러 미국에 있을 때 태어났다.
시민권자여서 언젠가는 미국에 다시 돌아갈 거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나 보다.
영어로 말문이 트일 때쯤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초, 중학교를 다니면서 영어 하고는 거리가 멀어졌다.
나는 교육에 극성맞은 엄마가 아니었다.
언젠가 미국으로 갈 거니까란 생각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학원에 다니는 게 안쓰러워서,
영어학원이나 수학학원은 거의 보내질 않았다.
아주 안 보낸 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은 그래도 2년 정도, 수학학원은 6개월 남짓 보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들이 소문자 b랑 d를 구분 못하는 거 보고는 이제 학원 다니지 말라고 했었다.
난 일하는 엄마였기 때문에 학원 숙제를 봐줄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아들이 학원을 왔다 갔다리만 하는 거 같아, 학원비 모아 유학을 보내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미국 가면 영어 쏼라쏼라 할 건데 미리 학원에 돈 버리나 싶었던 거다.
영어는 문법으로 하는 게 아니다, 란 말을 너무 많이 들었었고,
믿는 구석도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이후로는 학교만 보냈다.
그러다가 중학교 졸업하고 더 이상 늦으면 안 될 거 같아, 미국으로 가서 10학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아들은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체로 바로 미국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영어학원 다니면서 스피킹은 안돼도 문법은 빠삭해서 학교시험을 잘 따라가는 아이도 아니었다.
난 미국에만 있으면 영어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들이 미국 고등학교에서 첫 영어 수업을 듣고 온 날,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땠어?”
“어… 뭔가 다들 되게 자연스럽게 말하는데, 나는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돼.”
대화 자체는 단순한 표현으로 어떻게든 따라가지만,
문장을 길게 만들려고 하면 단어만 나열될 뿐, 문장 구조가 엉망이 됐다.
다행히 아들 학교는 한국아이들이 많은 학교였고, 학교 레벨은 9(지금은 10)로 아주 좋은 고등학교였다.
한국아이들이 많아서 더 영어가 안 늘었던 탓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장점도 많았다.
한국아이들이 많은 학군이 좋은 학교라서 말썽을 부린다거나 왕따나 인종차별 없이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과목 중에 영어과목이 있었는데, 이 과목이 진짜 한국에서 배우던 문법 과목이었던 거다.
문법뿐만 아니라 리딩, 라이팅등, 한국 영어학원에서 배우는 그대로인 수업인데,
아마 한국에서 문법 학원을 다니다 왔으면 천재소리 들었을 거 같다.
아들은 고등학생인데도, 문법 따라가기를 너무 힘들어했고,
그런 아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영어 학원 보내고 올걸하고 많이 후회했었다.
문법이 없으면 문장을 만들 수 없다
영어는 말로 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글을 쓸 때는 문법 구조를 모르면 한계에 부딪힌다.
한국에서 문법이라도 탄탄하게 다졌다면?
적어도 문장을 만들 때 기본적인 틀이라도 잡혔을 텐데.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면 된다”고만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미국에 왔어도 기본 틀이 없으니 말도, 글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결국 문장을 완성하는 힘이 부족했다.
이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다시 문법책을 펼치다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은 문법이 부족해서 영어가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을 스스로 알게 되었고,
결국 다시 문법 공부를 시작했다.
인강도 들었고, 미국까지 와서 영어 과외도 했다.
📌 그리고 지금은?
여전히 영어 시간은 쉽지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아예 막막하지는 않다.
처음에는 영어는 문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결국 기본 문법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솔직히 한국에서 문법이라도 확실히 떼고 왔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그게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그래도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다시 다지면 되는 거겠지.
유학이나 이민을 계획 중이라면 한국에서부터 영어는 공부를 하고 오는 게 더 수월할 거 같아요.
아들아, 지금 힘들어도…
이제 하나씩 정리하고 나면 훨씬 편해질 거야.
영어, 결국은 기본부터 쌓아야 한다는 거, 엄마도 배운다.